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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실망하고 자신에게 좌절하고 있습니까? | 유기성 목사 | 2022.10.23 설교

by 정보톡톡01 2023. 6. 3.

 

베드로는 끔찍한 실패자였다 | 유기성 목사 | 2022.10.23 설교

요 18:15-27

https://www.youtube.com/watch?v=tcaqWBjX6bQ 

 

요 18: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라갔다. 그 제자는 대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라서,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안뜰에까지 들어갔다. 16 그러나 베드로는 대문 밖에 서 있었다. 그런데 대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인 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문지기 하녀에게 말하고,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 17 그 때에 문지기 하녀가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도 이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베드로는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18 날이 추워서, 종들과 경비병들이 숯불을 피워 놓고 서서 불을 쬐고 있는데,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19 대제사장은 예수께 그의 제자들과 그의 가르침에 관하여 물었다. 2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소. 나는 언제나 모든 유대 사람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으며, 아무것도 숨어서 말한 것이 없소. 21 그런데 어찌하여 나에게 묻소?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를,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시오. 내가 말한 것을 그들이 알고 있소." 22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경비병 한 사람이 곁에 서 있다가 "대제사장에게 그게 무슨 대답이냐?" 하면서, 손바닥으로 예수를 때렸다. 23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한 말에 잘못이 있으면, 잘못되었다는 증거를 대시오. 그러나 내가 한 말이 옳다면, 어찌하여 나를 때리시오?" 24 안나스는 예수를 묶은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보냈다. 25 시몬 베드로는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도 그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베드로가 부인하여 "나는 아니오!" 하고 말하였다. 26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으로서, 대제사장의 종 가운데 한 사람이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동산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그러시오?" 27 베드로가 다시 부인하였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예수님께서 심문을 당하실 때, 정말 기가 막힌 일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의 종 하나가 예수님의 대답이 불손하다고 뺨을 때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수제자 베드로가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주님을 저주하기까지 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이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가장 충격을 받았고 고통스러웠던 사람은 베드로 자신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좌절했겠습니까? 차라리 죽고 싶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자타가 공인하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그는 맨 처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한 사람입니다,

그는 가장 놀라운 기적들의 목격자였고, 그 자신이 물 위를 걸었던 사람입니다.

그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기도 싫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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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본문으로 처음 설교하였을 때, 너무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도대체 무슨 설교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베드로의 잘못을 시시콜콜 지적할 것입니까? 베드로가 그렇게 된 이유를 밝히는 것입니까?

그런데 기도 중에 갑자기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에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오 그렇습니다!” 마음에 빛이 비추이는 것 같았습니다.

베드로는 끔찍한 실패자였지만, 그는 결국 위대한 사도가 됩니다.

‘주여 그렇습니다.’ 마치 내 일인 것처럼 기뻤습니다.

그때가 제가 가족과 함께 어디를 가면서 운전 중이었는데 아내와 딸들에게 소리쳤습니다. “‘끝이 아니었다!’ 그렇게 메모해 줘!”

 

눅 22:61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째 부인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의 눈이 마주친 것입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바깥으로 나가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베드로를 돌아보신 예수님은 눈으로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요?

“야, 베드로, 네가 그럴 수 있어?!” 책망과 분노의 눈이었을까요?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이미 베드로가 부인할 것이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눅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베드로의 본래 이름은 시몬인데, 예수님께서 반석이라는 의미의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할 사람에게 베드로라니 마귀가 배꼽을 잡고 웃을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왜 반석이라는 이름을 주셨을까요? 베드로가 끔찍한 실패를 하겠지만 반드시 다시 일어나 교회의 반석이 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당신을 부인했을 때, 예수님의 마음은 분노가 아니라, 베드로가 죄책감에 사로잡혀 스스로 무너질 것을 더 걱정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얼마나 의협심이 강하며 주님을 사랑했는지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입으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는 사실 때문에 베드로가 영원히 예수님을 떠나 버리거나 가룟 유다처럼 자살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눈으로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괜찮다.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해야 돼”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눈을 쳐다보았기에 베드로는 밖에 나가 통곡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던 기록은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으면서 동시에 한없는 격려와 확신을 주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나도 베드로처럼 변화시킬 수 있다!’

‘주님은 저 사람도 베드로처럼 변화시킬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믿음입니다.

‘나는 왜 이래’ ‘저 사람은 안 돼’ 하는 것이 다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저주까지 한 베드로에게 왜 이렇게 자비로울 수 있으셨을까요?

그의 변화를 내다 보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변화를 믿으니 실패자 베드로를 끝까지 품어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도란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며 마귀가 배꼽을 잡고 웃을 일입니까?

우리도 예수님을 부인한 순간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꼭 말로 부인해야 부인한 것입니까?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 것이 다 예수님을 부인한 것입니다.

예수동행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 예수님을 생각하지도 않고 살고 있었음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미워하는 것보다 더 심한 것이 무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중에 가장 무시 받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아무리 믿음의 실패를 하여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요 6:39 ...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낙심하지 말아라, 너는 성도다! 내가 너를 반드시 성도가 되도록 할 것이다.”

이 말은 예수님을 부인해도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실패가 있었어도 낙심하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신앙의 실패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은 쓰실 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베드로를 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자였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 딱 한 사람 있다면 베드로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실패자로 생을 마치지 않고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도 변화되었다면 우리도 변화될 것입니다.

 

저는 저 자신에 대한 좌절감 때문에 무너질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은밀한 죄, 도무지 조절이 안 되는 감정, 분노, 욕망, 천성적인 게으름,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생각, 제 속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때 붙잡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 2022 선교대회 때 말씀을 전하였더니, 어떤 목사님이 “제 주위에는 믿고 맡길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제자 삼는 사역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저는 그분께 “베드로는 대 실패자였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보지 말고 그 사람 안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제자로 부름 받을 때 이미 자신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눅 5:8)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10)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베드로가 된 것은 주님이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믿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 사도가 되지 않았습니까?

하디 선교사가 보기에 한국 사람들 중 예수님을 제대로 믿을 사람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회개 부흥을 통하여 한국에 대 부흥이 임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신다는 말은 아닙니다.

실패자라고 누구나 쓰신다는 말도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되면 그리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실패자였던 제자들에게 성령을 기다리라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마가 다락방에 모였지만, 어떻게 열흘을 기다릴 수 있었겠습니까? 누군가 끊임없이 격려하면서 마음을 잡아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였을까요? 베드로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던 끔찍한 실패자였기에 베드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령께 모든 것을 걸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령받기까지 열흘이 문제가 아니라 열 달도 기다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끔찍한 실패가 베드로로 하여금 오직 성령만 갈망하게 하였고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리게 하였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실패를 겪으면서 마음이 무너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이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사모하며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면 시험될 일도 두려울 일도 좌절도 없을 것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목사님이셨고, 기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템플턴상을 받는 자리에서 자신이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하였음을 고백했습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 신사참배를 했느냐 안 했느냐는 것은 그가 참 신앙인이냐 아니냐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여길 정도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신사참배 했었음을 고백하는 것은 모든 명예와 지위를 다 잃어버릴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런 한경직 목사님을 한국 교회 목사들의 표상으로 만드셨을까요? 실패자를 쓰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한경직 목사님을 기억하기를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라 합니다. 아마 한경직 목사님은 자신이 신사참배 했던 죄인이요 실패자인데, 주님의 은혜로 쓰임 받는다는 것을 평생 명심하셨던 것 같습니다.

 

30대 젊은 목사님께서 은밀한 죄와 싸우며 승리하였던 일을 책으로 내었습니다. 장산하 목사의 [죄에 좌절한 이 시대 청년들에게]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은밀한 죄와의 싸움을 싸우면서 실패와 좌절을 겪다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을 깨닫고 죄에서 승리한 보고서입니다.

은밀한 죄로 괴로워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은밀한 죄에서 벗어나려면 오직 하나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여야 합니다.

그것을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너무나 탁월하게 정리하였습니다.

또한 실제 죄에서 승리하도록 자상하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제로 쓴 책으로서는 너무 일찍 책을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삶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할 만큼 여유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담대한 이 고백이 장산하 목사님의 앞으로의 삶을 지켜줄 것이라 믿어졌습니다.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원하는 이들은 꼭 이 책을 읽어 보기 바랍니다.

죄로 무너졌던 청년을 주님이 어떻게 놀랍게 쓰시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평범하다 못해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라, 주님을 바라보라, 하는 말씀에 목숨을 걸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게 아무런 희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실패가 오히려 제겐 유익한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제 안에 거하시지 않다면 저는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 안에서 역사하시면 어떤 자리에도 담대합니다.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다면 그것이 아무리 끔찍한 실패였어도 은혜입니다.

아시아 2022 대회 때, 아시아의 교회 지도자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20년 전 한국 교회 목사님들은 너무나 자신만만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겸손해진 모습입니다.”

저는 이 말이 감사했습니다. 그러면 됩니다.

한국 교회의 실패 때문에 주님은 더 쓰실 것입니다.

베드로가 증인입니다.

 

여러분, 좌절이 있습니까? 사람에게 실망하고 자신에게 좌절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나의 실패를 주님께 드립니다.

실패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위대한 사명자로 살게 하소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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