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세계관] 유신 진화론의 주장과 그에 대한 비판

 

  지난 한 세기 동안 생명의 기원에 대한 질문만큼 기독교인들을 고심하게 했던 주제는 없을 것이다. 많은 과학자와 교육자들이 진화를 과학적 사실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공교육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신앙과 학교에서 배운 과학적 정보들 사이에서 고민해 왔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식물과 동물들을 “그 종류대로”(창 1:25)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또한 첫 사람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그 배필인 하와를 창조하셨으며, 그들에게 가정을 허락하시고 다른 생명체들과는 구별되게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림의 생육 및 문화 명령을 내리셨다고 분명하게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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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에 진화론은 150억 년에 이르는 오래된 우주와 45억 년 이상의 지구를 가정한다. 그리고 하나의 단세포 생명체가 우연히 탄생했고, 장구한 시간 동안 진화라는 과정을 통해 다세포 생명체를 거쳐 어류-양서류-파충류-조류-포유류로 다양하게 종 분화가 이루어졌다고 가정한다. 또 원숭이들 중에서 어떤 개체가 우연히 인간으로 진화되어 나왔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따르게 되면, 창세기의 앞부분은 신화 속 이야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생명의 기원에 대한 창조와 진화의 설명이 상극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양자 간에 조화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진화론자들이 과학과 교육계를 장악하고, 모든 교육 기관을 통해 진화의 패러다임을 가르쳐 왔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의 교육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며 진화론의 진위를 밝히는 수고를 하지 않는 한, 진화론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창조와 진화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 중에 몇몇 기독교인들이 중간 지대를 개발했는데, 이것을 ‘유신 진화론’이라 부른다. 그 주장을 요약하면, “첫 생명체가 만들어질 환경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지만, 이후 모든 과정은 진화라는 방법을 통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중간 지대를 찾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첫째, 주류 과학계의 강력한 진화 패러다임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 타협하는 것이거나, 둘째, 진화론에 의해 점점 내몰리고 있는 기독교를 과학과 화해시키려는 목적이 있겠다.

  유신 진화론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다. 의사이자 유전학자인 그는 낭포성 섬유증을 비롯한 여러 유전 질환의 원인 유전자와 그 돌연변이의 정확한 부위를 밝혀내는 업적을 이루었다. 또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수장으로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이끌어 2002년에는 인간 유전체의 첫 편집본을 발표하였다. 2006년에는 인간 유전체의 유전 정보를 밝혀 가는 과정을 기독교인의 입장으로 간증한 《신의 언어》(The Language of God)”[33]를 출판하였다. 이 업적들로 유명해진 그는 기독교와 과학이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2009년 바이오로고스(BioLogos) 재단을 설립하였다. 자신이 밝혀낸 인간 유전체 속에 내재된 정보의 의미를 자신의 재단 이름과 책 제목에 담음으로써 기독교와 과학의 타협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보여 주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 과학자와 신학자들이 이 중간 지대를 하나의 해결책으로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유신 진화론을 크게 우려하는 견해가 있다. 성경학자 웨인 그루뎀(Wayne Grudem)은 바이오로고스 재단이 주장하는 유신 진화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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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는 140억 년 전에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대폭발에 의해 탄생했다. 우주의 모든 속성들은 생명이 탄생할 수 있게 잘 조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구에 있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단 생겨난 단세포 생명체는 진화와 자연 선택을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성과 복잡성을 가지게 되었다. 진화가 시작되고 난 후에는 어떤 초자연적 간섭이 필요하지 않았다. 인간도 이런 과정의 일부분이며 대형 유인원들과 조상을 공유한다. 인간의 독특성은 진화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데, 그것은 선악을 구별해 주는 존재인 하나님을 발견한 인간의 문화 때문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유신 진화론도 결국에는 진화론이며 그들은 창세기의 창조주 하나님의 역할을 수정하였다.

  오스 기니스(Os Guinness)는 “유신 진화론을 수용함으로써 교회가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통 선한 의도로 어떤 견해나 행동 양식을 수용하지만, 그것들이 기독교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복음을 무너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J. P. 모어랜드는 “유신 진화론의 수용은 이 시대의 교회가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주된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전도할 때, 하나님의 창조를 믿되 진화론을 거부하라고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람이 회심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기독교 지식의 원천을 부정하는 행동을 통해 기독교를 이성 없는 종교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받아들이는 첫 의도와는 상관없이 유신 진화론은 진화 과정에서 첫사람 아담을 특정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고, 인간 원죄의 책임 소재나 존재 여부도 불분명하게 만들어 버린다. 원죄의 교리가 희미해지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 역시 그 필요성을 잃어버린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유신 진화론을 취하는 순간, 과학주의가 우위를 차지하면서 신학과 성경의 가르침은 과학의 검열을 받아야 하는 위치로 전락하게 된다. 또 과학의 검열에 의해 성경의 첫 부분에 대한 해석을 수정해 본 이 경험은, 이후 과학으로부터 압력이 올 때마다 그 해석을 쉽게 수정하게끔 만들 수 있다. 쉽게 수정될 수 있는 성경의 해석을 누가 굳게 믿을 수 있겠는가? 이에 데이비드 노에벨은 “진화론을 너무나 확신한 나머지 창조론에 대해서는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너무나 많다”고 탄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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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진화론은 명백한 과학이 아닌 160여 년전 그 시대의 과학 수준에서 그럴 법하다고 생각한 가설에 대한 형이상학적 믿음일 뿐이다. 이 믿음의 세계관을 통해 재생산된 거짓 지식들이 과학적 발견으로 둔갑하여 진화론의 패러다임을 굳건히 지지하고 있다. 이런 진화론적 환경에서 교육받은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회심하는 순간,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전에 배우고 익혔던 자신의 전공 지식과 세상의 이념은 이전 세계관의 해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견고한 진”(고후 10:4)일 수 있고,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경고했던 “다른 복음”(갈 1:7)일 수도 있다.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것이 구원의 필요충분조건인 것에 대해 할례로 대표되는 율법 준수의 의무를 복음에 추가한 “다른 복음”을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유신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 부분을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전에 내가 가졌던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고,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고후 10:5) 하는 과정이 거듭난 기독교인에게 꼭 필요하다. 이것은 육신에 속한 싸움이 아니고 나의 경험과 지식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을 믿는 믿음에 근거하여 어떠한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가는 영적 전쟁이기 때문이다.

- 류현모 교수(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교실 교수), 강애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