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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테디오스 : 염려가 없었던 초대교인들

by 정보톡톡01 2018. 12. 30.

티테디오스 (Titedios) - 김윤희- 

한 신학자가 초대 교인들의 삶이 기록된 문서들을 조사했다. 그런데, 사도뿐 아니라 평신도로 생각되는 이름에 " 티테디오스 쟌, 티테디오스 폴, 티테디오스 로이”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핍박이 심했던 로마 지하교회 에도 여기저기 이 단어가 쓰여 있었다고 한다. "티테디오스"가 무슨 의미인가?

 


티테디오스라는 단어의 뜻은 "염려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가령, ‘티테디오스 폴’은 염려하지 않는 폴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이름 앞에 이 단어를 붙혔을까? 예수를 믿는 것이 발각되면 비참한 고문을 받는 혹독한 박해속에서도 근심과 염려는 신앙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초대교인들은 근심과 염려에 매여 살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보화라고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참신자의 모습은 염려하지 않는 자의 모습일 것이다.

 

 “사람이 살아있을 때는 근심에 먹히고, 죽었을 때는 벌레에 먹힌다." 는 탈무드의 격언이 있다. 근심이라는 어두운 세력은 그림자 같이 인생을 따라다니며 우리의 행복을 좀 먹는다. 염려란 “나누는 것, 갈리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과도하게 마음을 쓰고 걱정하는 것이다. 염려란 작은 불씨와 같아 내버려 두면 온 집을 불태우는 것과 같다. 염려는 기쁨과 활력을 빼앗고 마음을 황폐하게 하여 본인뿐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까지도 불행하게 만든다. 


우리는 왜 염려할까? 믿음의 반대는 염려다. 염려는 불신앙이다. 염려는 변화 시킬수 없는 상황에 대한 우리의 단순한 반응이다. 믿음이 없으면 염려하게 된다. 주님은 우리들을 염려하는 사람으로 부르지 않고 세상의 수많은 염려를 이기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으로 우리를 불렀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없어지지 않으면 평생 염려학교에서 졸업하지 못하고 걱정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중략)

  

무거운 염려의 짐들을 주님께 내려놓자. 어떻게 맡길 수 있을까? 아무리 절망 스럽고 칠흙같이 어둡더라도 근심과 염려와 결별하자. 그리고,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자. 그러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주님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안에서 지켜주신다는 놀라운 약속을 믿으면서.. 기도는 염려의 독을 제거하는 특효약이다. 혹독한 박해속에서도 믿음을 잃치 않고 염려와 근심을 벗어 버리고 한 초대교인들의 디테이오스. 우리 이름 앞에 디테이오스를 붙이고 근심하지 않는 매일의 삶이 되어 보지 않겠는가?

출처 : http://blog.kcmusa.org/blog/index.php?blog_code=globalyouth&article_id=4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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