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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아가 아니다

by 정보톡톡01 2018. 12. 14.

자신에 대하여 크게 실망하여 사역만 아니라 가정 조차 포기하겠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망이 절망이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계속 생깁니다.
사회의 지도자였던 이들이 그러니 참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때때로 극심한 좌절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말 한마디에, 눈 빛 하나에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절망이 왜 생기는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무서워하는 종의 영’ (롬 8:15), 곧 ‘고아의 영’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대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우울해 하고 답답해 하고 절망하고 탄식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불신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낙심과 탄식도 영적으로는 불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는 ‘양자의 영’ (롬 8:15)이 임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 14:18)

우리가 “난, 절망이야” “이젠 끝났어” 할 때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솔직히 하나님께서 먼저 “나도 지쳤다” “너는 끝인 것 같다” 하실 만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치시고 포기하실 가능성이 단 1%도 없습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속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24 시간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예수동행일기를 쓰면서 변화된 것 중 하나는 저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오랫동안 저 자신이 부족하고 무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적인 문제인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저를 보시는 주님의 마음이 어떠한지, 깨달아졌습니다. 
저의 존재 자체가 주님의 기쁨이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에 대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보라는 것입니다.

욥의 결말을 잘 알기에 욥이 낙심하는 말을 할 때, 너무나 답답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결말은 어떨 것 같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고 했습니다.
이것을 정말 믿으라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저렇게 서 있고, 성령의 내주하심이 분명하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이 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생각 하나도 영 분별을 잘 해야 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감동적인 연설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냐는 내가 바라던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나는 내가 되어야만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내가 될 수도 있었던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어제의 그 사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면 충분합니다.

여행 중 좋은 가이드를 만나면 “오늘은 또 어떤 좋은 곳으로 인도할까? 어떤 좋은 식당으로 데리고 갈까?” 기대하게 되지 않습니까?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 하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기대하고 즐거워하고 믿고 순종하는 것 뿐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고아가 아닙니다. (유기성 목사님 페이스북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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