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분류

종교적 경건만 있고 친밀함은 없는 사람들

by 정보톡톡01 2018. 12. 27.

두려움과 큰 기쁨 - 유기성 목사


저는 목사의 아들이었기에 교회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어른들이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의 중직이기에 예배 열심히 드리고,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성경도 많이 아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나’ ‘나’ 하면서 자기 주장이 강하고 교인들끼리 서로 미워하고 판단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깊은 회의를 가졌었습니다.




나중에 이것이 율법주의적인 신앙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열심은 있으나 주님과의 친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마 7:22-23을 보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던 이’들에게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심각한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큰 역사를 일으켰던 자라도 ‘주님은 그를 도무지 알지 못할 수 있다’ 그리고 ‘불법을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알지 못한다”는 말은 종교적인 경건만 있었지 실제로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주님이 함께 하심을 정말 안다면 어떻게 불법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국 목회자 세미나 때 마음 아픈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국 교회가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하는데, 한국 교회에 왜 위기가 왔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다 주님과 친밀한 것은 아닙니다. 
종교적 경건, 율법주의적 신앙생활이 무섭습니다. 우리 자신을 속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금 한국 교회의 숨통을 막고 있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 29: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수 있습니다.
죠지 뮬러 목사의 일기를 보면, 그가 할레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신학생 900여명 중 9명 정도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어떻게 목회자를 지망하는 신학생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고 친밀히 동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죄짓기가 어렵습니까? 죄 안짓기가 어렵습니까?
주님과의 친밀함에서 대답이 갈리게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죄 짓는 것이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세상의 두려움과 다릅니다.
큰 기쁨이 함께 오기 때문입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고 모든 재산을 다 내놓았습니다.
주님을 만나 누리는 기쁨이 돈을 소유한 기쁨 보다 비교할 수 없이 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는 확신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을 만나 행복한 사람인지는 배우자와 자녀들이 알 것입니다.


성공적인 지위, 많은 사역이 우리를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심령은 더 매말라질 수 있습니다. 
부자 청년은 재산 때문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 시대의 가장 큰 죄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것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두려움과 큰 기쁨’이 주님과 인격적이고 친밀히 동행하는 사람인지를 분별해 줍니다. 
이처럼 두려움과 큰 기쁨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을 주님을 경외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기성 목사님 페이스북에서.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