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집안에 독소를 퍼뜨린 사랑 중독
야곱은 내면이 공허했기 때문에 ‘로맨틱한 사랑’이라는 우상숭배에 빠지기 쉬웠다. 그는 라헬을 얻기 위해 7년간 일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당시 신부를 데려올 때 치르는 통상적 값보다 거의 네 배나 많은 수준이었다. 비양심적인 라반은 야곱이 지독한 상사병에 걸려 있음을 보고 그 상태를 이용했다.
라헬과 결혼해도 되겠느냐는 야곱의 물음에 라반은 일부러 애매하게 답했다. ‘좋다, 그렇게 하자’라고 확답을 준 게 아니라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창 29:19)라고 말했을 뿐이다. 야곱은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이를 승낙으로 들었으나 사실은 승낙이 아니라 ‘너와 라헬이 맺어지는 것도 괜찮겠지’ 정도에 불과했다.
7년이 지나자 야곱은 라반에게 가서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라고 말했다. 풍습대로 성대한 혼인 잔치가 열렸다. 한창 흥이 무르익었을 때 라반은 얼굴에 베일을 덮어씌운 채 야곱의 아내를 데려왔다. 야곱은 술에 취한 상태로 그녀와 동침했다. 그런데 아침에 보니, 레아였다. 백주에 야곱이 보니 자신이 첫날밤을 치른 여자는 라헬의 볼품없는 언니 레아였다.
야곱은 분노에 부르르 떨며 라반에게 가서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25절)라고 따졌다. 라반은 동생보다 언니가 먼저 결혼하는 게 이 지방 풍습임을 몰랐느냐고 태연히 응수했다. 그러면서 7년을 더 일하면 기꺼이 라헬도 주겠노라고 덧붙였다. 비수에 찔리고 덫에 걸린 야곱은 라헬도 얻으려고 7년을 더 봉사했다.
야곱이 어찌 그리 쉽게 속아 넘어갈 수 있었는지 의아하겠지만 그는 중독자처럼 행동한 것이다. 로맨틱한 사랑은 여러모로 마약처럼 작용해 삶의 현실을 도피하게 해 준다. 여러 폭력적 관계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미모의 여성 샐리는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남자들이 제겐 술이었어요. 남자 품에 안겨야만 삶을 감당할 수 있고 제가 괜찮아 보였거든요.”
또 다른 예로 어떤 나이든 남자는 배우자를 버리고 묘령의 여자를 만난다. 자신이 늙어 가고 있다는 현실을 감추려는 처절한 시도다. 어떤 젊은 남자는 두어 번 동침할 때까지만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 뒤에는 관심을 잃는다. 그에게 여자란 자기 매력과 정력을 확인하기 위한 필수품에 불과하다.
우리의 두려움과 피폐한 내면 때문에 사랑은 마약으로 변한다. 고통을 달래는 마취제인 셈이다. 그리하여 중독자는 늘 미련하고 해로운 선택을 일삼는다.
야곱이 바로 그랬다. 라헬은 그에게 단순히 아내가 아니라 ‘구세주’였다. 그녀를 어찌나 애절하게 원하고 필요로 했던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들었고 보고 싶은 것만 봤다. 그래서 라반의 속임수에 쉬이 넘어갔던 것이다.
야곱이 라헬을 우상으로 섬겼기에 이후로 수십 년간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레아의 아들보다 라헬의 아들을 떠받들고 편애해서 모든 자녀의 마음에 상처와 원한을 남겼고 온 집안에 독소를 퍼뜨렸다. 흔히 사랑에 빠진 사람을 가리켜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라고 하는데, 정말 말 그대로라면 그 해로움이 얼마나 크겠는가.
-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 팀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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