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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밭에서 시작한 133 교회 개척 이야기

by 정보톡톡01 2019. 1. 14.

옥수수 밭에서 시작한 133 교회 개척 이야기

남미 파라과이 임동수 · 유은선 선교사

  

“풍토병으로 두 번이나 죽기 일보 직전이 된 임 선교사를 보고

기적적으로 살아나도 인디언 선교는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다시 인디언들에게 나타났고,

그리고 인디언들이 손을 내밀며 선교가 다시 시작되었다.

아무리 깊숙한 곳이라도 그들의 방식으로 인디언들은 교류하고 있다.

자연스레 이러한 교류가 더 깊은 곳까지 복음을 실어 나르는 손발이 된다.

그리고 인디오 선교 전략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필자 註


사진출처 : 2007년 기독교 타임즈 기사


  

풍토병을 앓고도 계속는 사역에 현지인 감동

  

임동수 선교사 부부는 사역 초기에 세운 현지인교회를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담임하고 있다. 동양인이 한 명도 없는 곳에서 현지인들과 살며 사역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묵묵히 사역을 감당해왔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교회 옆에 자리하고 있는 임 목사의 6평짜리 공간이 그의 선교철학을 대변해준다.


그는 꾸준한 섬김의 자세를 통해 현장과 현지인들을 변화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교사 혹은 선교지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변하고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도 이 선교사 부부는 우리들과 함께 있을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현지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선교 초기와 최근에 임 선교사는 두 번의 풍토병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첫 번 때는 상황이 매우 심각해서 의사들도 고개를 저었었다. 당연히 교회 교인들도 그 상황을 알고 있었고, 그들 스스로 선교사가 이 일을 겪고 나면 더 이상 이곳에서 사역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선교사는 병상에서 일어나서 다시 그들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예전과 동일하게 자신들과 함께 지내며 사역하는 모습을 통해 신뢰는 더 두터워졌다.


11월 마지막 주가 창립기념주일이다. 지난해 창립기념주일 강단 가득 채운 사역자들을 보며 두 번의 죽음 문턱까지 갔던 풍토병 속에서의 섬김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며 임 선교사 부부는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임 선교사는 그의 첫 번째 교회(센터교회) 사역의 아쉬운 점에 대해 예배당을 먼저 짓고 사역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한다. 교회 개척 사역은 대부분 먼저 전도해서 예배공동체를 세우고, 모든 상황과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그때 비로소 예배당 짓는 일을 하는데 센터교회는 먼저 예배당을 세우고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직접 땀 흘려 세운 예배당과 선교사가 와서 전량 외부의 지원으로 세운 예배당이 같을 수가 없었다. 이 깨달음이 좋은 교훈이 되어 그 이후로 예배당 세우는 정책을 바꾸었다.



 

 

교회개척 후 정기적인 세례와 성찬집례, 그리고 교회건축

  

파라과이는 1992년까지 가톨릭이 국교였으나 이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기득권층은 거의 대부분 가톨릭 교인이고, 파라과이 전직 대통령도 가톨릭 주교였다. 그렇지만 파라과이에는 도시를 제외한 지역에는 교회가 없다. 심지어 성당도 없는 지역이 너무 많다. 종교의 자유가 있고, 복음을 전하는 자를 환영하는 이 나라에 오히려 교회가 부족하고 전도자가 적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다. 임 선교사는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며 자신이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사역이 무엇인지 바로 알았다고 한다.


“복음을 듣지 못하는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인디언들을 찾아다니며, 인디오 마을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파라과이에서는 집회에 초청을 하면 싫든 좋든 한 번은 얼굴을 비춰주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것이 선교전략이 되었습니다.”


임 선교사는 인디오 선교에 대해서 “파라과이 원주민 언어인 과라니어에는 하나님을 뜻하는 전능자라는 단어 ‘냔데자라’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문화가 부분적이라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전도 집회를 통해 다른 마을로 복음이 확산

 

전도 집회는 2박 3일에서 일주일까지도 진행된다. 임 선교사는 “자의든 타의든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선교사의 몫이 아니라 주님의 몫”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선입견으로 판단하는 것 가운데 맞아떨어지는 것은 많지 않다. 오히려 주님의 역사가 더 놀랍다. 집회를 하면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생기게 되는데, 그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예배공동체가 생긴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리더로 세우고, 그로 하여금 공동체를 이끌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그 공동체에 방문하여 세례와 성만찬을 베푼다. 초창기엔 직접 모든 곳을 찾아 다녔는데 지금은 신학 교육을 받은 현지 사역자들이 구역을 분담하고 있다.


임 선교사는 “제가 모든 예배공동체에 동일하게 제일 먼저 강조하는 말이 있는데 그건 바로 “당신들이 알고 있는 또 다른 마을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일가친척들과 친구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더 깊이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곳에 복음이 전해지고 새로운 예배공동체를 세우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게 예배 공동체가 세워지고 인원이 많아져 더 이상 마당이나 공터나 나무 밑에서 예배하는 것이 힘들어질 때쯤 임 선교사는 그들에게 예배당을 세우는 일을 권유한다. 그리고 원주민들이 땅을 기증하고 시간을 내어 함께 일을 할 준비가 되면 임 선교사는 센터교회 건축팀들과 함께 자재를 들고 가서 건축을 시작한다.


보통 건축자재는 지역 사회의 집들이 나무이면 나무로, 도시권처럼 벽돌이면 교회도 벽돌로 짓는다. 예배당은 자신들의 집처럼 가장 편하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예배당 밖에서 서성이는 것보다 볼품없어 보일지라도 편하고 포근한 집 같은 곳에서 예배드릴 때 마음이 열리고, 그런 열린 마음에 성령이 임재하기 때문이다.


건축에 관해 이야기를 듣다 문득 건축비에 관해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그가 지금까지 세운 교회가 133곳이라는데 그 많은 건축비는 어떻게 충당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역 초기부터 지금까지 선교후원자들에게 동일한 건축비를 요청해왔다고 했다. 문득 그 이야기를 듣다 현실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뛰는 남미에서 어떻게 그게 가능한 소리일까 싶어서였다. 그러다 그의 교회에 방문했을 때 교회 뒤편에 가득 쌓인 문과 창문을 보았던 것이 기억났다. 그것들은 모두 그의 목공소에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어림잡아 300개 가까이 되는 문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며 그의 수고를 미루어 짐작해 보았다.



 

자체 목공소와 목재소가 있어 건축비 절감

  

그는 모든 건축이 가능하기 위해서, 특별히 재정적인 부분이 가능하기 위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은 직접 다 만들고 있었다. 그가 만든 나무 창고에는 웬만한 목재소보다 나무가 많았다. 임 목사는 전국을 다니며 좋은 나무가 보이면 먼저 관청에 허락을 받고, 원목을 사서 자르고, 이를 그의 목재소로 실어온다. 그리고 건조장에서 2~3년간 말렸다가 건축에 필요할 때 꺼내서, 자르고 깎아 사용한다. 임목사의 제재소와 목공소는 사업자등록도 되어 있다는 소리를 듣고 한국에서 이런 일들을 해보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전혀 경험이 없었다며 손사래를 치며, 단지 선교지에서 목재소와 목공소가 필요한 상황에 처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묻자 “나무를 잘라 실어오는 과정”이라고 했다. 전기가 없는 정글에서 나무를 트럭에 실어 올리는 일을 전적으로 사람의 힘으로 해야 해서 그때가 가장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매번 부족한 건축비를 채우기 위해 그가 받는 선교비 중 20%만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전부 건축비로 몰아넣어야 한다. 그래서 매번 마트에서는 상태가 안 좋아 할인하는 물건들만 사야 하고, 아이들이 커갈 때 과자 한 번 사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그래서 임 목사는 솔직히 한 곳의 건축이 끝날 때마다 “주님 이곳이 마지막이길 원합니다”라고 기도하는데, 봉헌예배 때 기뻐하는 성도들을 보면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 수 있어 이 사역을 멈출 수 없다고 한다.

 

그렇게 세워진 교회들이 더 깊은 지역에 들어가 전도해서 예배공동체가 세워지면, 그들이 또다시 다른 곳에 들어가 예배공동체를 세우는 일이 지속된다. 어떤 지역은 제4교회까지 세워진 곳도 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일 년에 서너 곳의 예배당을 세웠는데 지금은 매년 15곳 이상을 세우고 있고, 지금도 예배당을 세우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지역이 20여 곳이 있다. 임 목사는 건축경험을 이렇게 들려준다.

 

“단지 예배공동체가 오래되었다고 해서 예배당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준비가 된 곳을 먼저 시작합니다. 그리고 최소한 3년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임목사가 건축 사역을 하며 놀라는 것은 정말 필요할 때마다 놀랍게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후원자가 연결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목회 사역을 하고 선교지로 나온 것이 아니라 급하게 선교사 과정을 마치고 나왔기에 건축 후원을 요청하거나 후원을 기대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의지할 데가 없으니 오히려 하나님이 직접 일을 하셨다.


어떤 때는 한국 방문 후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러 가는 버스 안에서 연락을 받기도 했고, 전혀 알 수 없는 교회나 개인으로부터 본인의 환갑잔치보다 주님의 성전을 짓는데 사용하는 게 주님이 기뻐하실 것이라며 후원을 해주었고, 교회 바자회를 통해 모았다며 건축비를 보내주기도 했다. 이런 일을 벌써 100여 차례나 경험하며 주님의 정확하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임 목사 부부의 고백이다. 임 목사는 여전히 지금도 건축 중에 있고, 그가 세운 교회 성도들은 각자 삶의 자리에서 항상 기도하며 미전도 지역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있다. 지역 사회의 손가락질 받던 이가 복음을 듣고 변하여 칭찬받는 이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된 삶을 통해 전도가 자연스럽게 되고 있다.

 

임 목사는 “선교는 예배가 없는 곳에 예배가 있게 하는 것”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 말대로 파라과이는 예배가 없던 지역에 예배가 드려지고 있고, 그 일을 위해 수많은 전도자들이 자신의 삶을 드려 헌신하고 있다. 그는 어느 날 파라과이 내지 깊은 곳에서 만난 한 전도자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숯을 구워 파는 사람으로 이미 그의 삶도 고단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일주일의 절반은 그 숯을 판 돈을 가지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자신이 가진 얼마 안 되는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전도자는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거친 손과 발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천사의 눈빛을 가지고 있었지요. 만일 그 전도자를 다시 천국에서 만나면 빛나는 보좌 곁에 서서 그 환한 눈빛으로 웃고 있을 것 같아요.”

출처 : 신앙세계 http://shinangsegy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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