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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캐슬 신드롬

by 정보톡톡01 2019. 1. 15.

(유태화 교수님 글 일부 발췌)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누구나의 마음에 하늘에 오르려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지 않나 싶다. 과거 모세가 시로 남겼듯이 인생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인데, 활시위를 떠난 활처럼 신속하게 흐르는 그 시간을 관통하며 살아온 삶을 회고해보면 “수고”와 “슬픔”뿐이다. 역설이 배어든 표현이다. 수고하였으되 슬픈 현실이니 말이다. 


무엇을 위하여 수고할까? 한국사회의 부모나 자녀는 왜 그런 무모할 만큼을 수고를 하는 것일까? 교육의 관문을 통과하여 <<스카이 캐슬>>에 들어가서 얻는 전리품이 무엇일까? 재물과 명예와 권력이 아닐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아닐까. 이것을 얻기 위해 인간은 그토록 수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제는 그런 수고와 함께 그것을 손에 넣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손에 넣은 과정에 몸이 축나고 정신이 병들고, 그렇게 시간의 흐름과 함께 소멸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원하던 것을 손에 넣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을 포장하고 세탁하더라도 결코 만족함이 없는, 그래서 슬픈 삶을 직면하지는 않는 것일까.


인간을 실제로 지킬 수 없는 바로 이러한 허무한 가치에 굴종하도록 인간을 꾀어내는 존재를 성경은 마귀라고 칭한다. 그리고 그 마귀는 공중, 곧 SKY의 권세를 잡은 자로 묘사된다. 마귀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 세상 즉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로서 끊임없이 인간을 미혹하는 일을 감행한다. 70이요, 강건하면 80인 인생살이를 그 실존의 끝자락에 도달하면 그렇게 무력할 수밖에 없는 재물과 명예와 권력을 취하는 일로 다 허송세월하게 만드는 존재이다. 


70-80의 삶을 살아낸 후 삶을 정리할 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던 욕망 그 자체를 제외하고는 평가할 만한 것이 전혀 없는 그런 벌거벗은 실존으로 인간이 자신을 직면하도록 만드는 존재, 그가 바로 마귀인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세상(SKY)의 민낯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소중한 존재인 인간으로 하여금, 땅만 바라보고, 이 세상에 속한 것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처소인 하늘(HEAVEN)을 향한 문을 닫아걸고 살아가도록 부추기는 존재가 바로 마귀인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소위 “고지론”이라는 것을 손에 쥐고 그리스도인 청소년들에게 외친다. “여러분 정체, 경제, 사회, 문화, 교육의 전 영역에 뚫고 들어가 고지를 점령하십시오. 모든 영역의 고지를 선점하여, 그곳에서 하나님의 선의를 떨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구호와 함께 이 지점을 선점하기 위하여, 주일에 예배하는 일도, 일상에서 기도하는 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돌아보는 일도 죄다 뒷전으로 밀어놓고,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한다. 그 고지를 위하여 과정을 무시하는 사람이 되도록 조장하는 것이다. 고지를 점령한 후에 그 부족한 면면을 채워 넣으면 되지 않느냐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어쩌면 이런 삶의 태도야말로 세상적이요,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것이라고 야고보가 읊었던 그 삶이 아닐까.


오늘의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나 교회는 지금껏 추구해온 “고지론”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직면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후기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나 교회는 그런 방식으로는 이 세상을 설득할 자격을 이미 상실해버렸다.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은사를 살려서 사회의 모든 영역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계층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어느 곳에서나 재물을 넘어서는 삶, 명예를 뚫고 나오는 삶, 권력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재물보다 귀한 삶의 세계, 명예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보게 하는 삶, 권력이 불필요하여 섬기지 않고서는 권력을 유지할 수 없는 삶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일에 마음을 쏟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일이 필요한 시점에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서 있지 않은가 싶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가정과 교회가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되, 어떤 자녀가 되기를 기도할지 깊이 묵상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지 않은가 싶은 것이다.

전문 링크 : 백석대학교 대학원 유태화 교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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